2016-08-31

김유정, 예쁜 척 안 해도 예뻐!

김유정을 그냥 예쁜 아역 배우로만 알면 큰코다친다. 꽃다운 얼굴에 선머슴 같은 털털한 매력, 그 속에 또렷한 여배우의 자아가 알차게 무르익고 있다.

스트라이프 패턴의 니트 풀오버는 SYJP.

어떻게 부를까요? 유정 씨? 유정 양? 상관없어요. 마음대로 부르세요. 촬영장에서는 주로 극중 이름으로 불려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남장 내시 ‘홍라온’으로 나온다고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남장 여자’는 있었어도 ‘내시’는 없었잖아요. 내시끼리 어울리는 장면이 되게 재미있어요. 대부분 남자배우들이랑 촬영하는데 ‘형’이나 ‘형님’으로 불러요. 남장을 한 건 처음이지만 제 성격이 그다지 여성스럽지 않아 편하더라고요 

천생 소녀일 줄 알았는데 예쁜 척하거나 애교 부리는 걸 어색해 한다고 엄마가 털털하세요. 주로 엄마랑 촬영장을 다니다 보니까 그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내숭을 떨거나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억지로 뭘 하질 못했어요. 그냥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드라마에선 누군가의 아역이 아니라 온전히 극을 이끄는 여주인공이에요. 작품에 임하는 느낌은 책임감이 많이 느껴져요. 드라마가 방영 전부터 화제가 많이 되고 있잖아요. 솔직히 부담스럽고 무섭기도 해요. 기대에 못 미칠까 봐. 첫 촬영 날짜가 다가올수록 자신감이 점점 없어지더라고요. 연기하기 불편하거나 어색한 장면이 있었던 건 아닌데 왜 불안할까 생각해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있더라고요. 이거 잘해야지, 잘해서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줘야지…. 드라마 스태프들이랑 엄마, 주위 친구나 배우 언니들이랑 얘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평소 하던 대로 즐기다 오라고, 다들 널 믿는데 왜 너는 자신을 믿지 못하느냐는 얘기들. 내가 나를 못 믿고 불확실한 상태에서 연기를 하면, 날 믿어주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만하진 않되, 자신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충분히 즐기고 있나요 정말 힘들긴 해요. 요즘 날씨도 덥잖아요. 한복을 입는 데다 남장이라 가슴에 압박붕대까지 했더니 첫 촬영 때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마음을 편히 먹으니까 주위 사람들도 보이고 흘러가는 대로 재미있게 촬영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선물 같은 작품이에요. 배우, 스태프 한 명도 겉도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드라마가 방영되면 현장의 이런 기운이 시청자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함께 출연하는 박보검 오빠와 많이 친해졌는지 정말 잘해주세요. 친오빠, 친동생처럼 지내고 있어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서로 친해지려고 같이 리딩도 하고 만나서 밥도 먹고 그랬는데, 제가 낯을 가리다 보니까 많이 가까워지진 못했어요.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고 함께 고생하다 보니 절로 친근감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보검 오빠뿐 아니라 진영 오빠, 곽동연 오빠, 내시로 나오는 다른 배우나 선배님들까지 다들 가족처럼 편안해요. 

예쁘다는 말, 혹시 듣기 지겹나요 아니요! 예쁘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는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멋있다, 매력 있다, 겸손하다, 예의 바르다, 그런 말들이 더 듣고 싶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진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요. 주변에서 예쁘다, 예쁘다 하면 더 예뻐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네, 가끔 해요. 여자라서 못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남자들도 여자가 아니라서 못하는 게 있는 것처럼. 특히 여자는 얌전해야 한다, 조신해야 한다는 그런 시선들이 불편해요. 저는 다리도 딱 붙이고 잘 못 있거든요. 행동하는 것도 선머슴 같고, 실제로 남자들이랑 얘기도 잘 통하고요. 


보이시한 핏의 데님 점프수트는 YMC. 팔찌는 Mzuu.


리본 디테일의 화이트 셔츠와 페더 장식의 데님 팬츠는 모두 Michael Kors. 링은 Mzuu.

딱 하루 남자로 살아볼 수 있다면 어떤 남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정우성 선배님? 멋진 남자가 돼서 예쁜 여자들 만나러 다니려고요(웃음). 이건 그냥 재미로 떠올려본 거고요, 아버지가 돼보고 싶어요. 

아버지라니, 왜요 가족이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일 모를 수 있는 존재잖아요. 진짜 그 사람이 돼보지 않고는 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다 알 순 없으니까. 아버지뿐 아니라 엄마, 언니, 오빠로도 살아보고 싶어요.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여자니까 커서 엄마는 될 수 있겠지만, 아빠는 못 되잖아요. 가장으로서 가족의 버팀목이 돼야 하는 책임감과 무게감 같은 걸, 제가 어떻게 다 알겠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생각난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음악 관련 포스팅이 많던데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따라 부르는 것도 좋아해요. 한 곡에 꽂히면 계속 그 노래만 들어요. 요즘 즐겨 듣는 건, 좀 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콜드플레이의 ‘Fix You’. 그리고 마이클 부블레의 ‘Home’. 영화 O.S.T도 많이 들어요. 

또 어떤 취미, 어떤 것들을 좋아해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물이나 풍경, 사람들, 이것저것 찍어요. 그리고 별자리 운세 보기! 매일매일 챙겨봐요. 전부 믿는 건 아니지만 기분 전환용? 오늘 행운의 색이 오렌지라고 했는데, 촬영하다가 오렌지색 옷을 입게 되면 ‘어!’ 그러는 거죠. 저만의 특이한 취미가 또 하나 있는데, 식당 메뉴판 보기에요. 집에서 인터넷으로 맛있는 음식점을 서치해서 메뉴판을 다 읽어봐요. 직접 찾아가기에는 시간 내기도 힘들고, 체중 관리를 해야 하니까 먹고 싶은 대로 다 못 먹잖아요. 어릴 때부터 자제하고 절제하다 보니까 음식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아요. 메뉴판을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거죠. 

패션에도 관심이 있나요 네, 옷 입는 거 좋아해요. 바지에 티셔츠, 캐주얼하게 입는 편이에요. 살을 드러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여름에도 반팔, 반바지는 잘 안 입어요. 오늘도 날씨가 더운데 이렇게 입었어요(블랙 트레이닝 팬츠에 블랙 후드 티셔츠). 누군가 만날 일이 생기면, 내 옷을 하나 꺼내 입고 나가는 게 기분 좋아요. 약속이 없으면 옷 챙겨 입을 일이 없잖아요.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많은가요 많지는 않지만, 학교 친구들도 있고 일하면서 만난 친구들도 있어요. 만나면 웃긴 얘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긴 하는데, 자주 보지는 않아요. 제가 연락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고, 주로 집에 있거나 밖에 나가도 엄마나 언니랑 나가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기거나 진짜 힘들 때는 친구들한테 연락하게 돼요. 자주 만나진 않더라도 그렇게 힘이 되는 존재가 있더라고요. 신기해요. 

사춘기는 무사히 지났어요? 남모를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는지 음… 그랬던 적은 있는데, 큰 파도는 지나간 것 같아요. 지금은 잔잔해요. 가끔 바람이 세게 불면 파도가 좀 높아지는 정도?


체크 패턴 셔츠는 Eyeye. 안에 입은 톱은 Obzee. 서스팬더는 Breuer. 링은 Vintage Hollywood.


그레이 코트는 Marimekko. 안에 입은 블랙 톱은 Bounce Finger. 팬츠는 Neil Barrett. 브레이슬렛은 Stonehenge. 링은 Mzuu.

본인이 철들었다고 생각하나요 철든 부분도 있고, 여전히 철없는 부분도 있겠죠. 그런데 전 철드는 게 싫어요. 어디선가 사람이 철들면 사는 게 재미없어진다는 말을 봤어요. 철들면 세상만사 다 받아들여질 것 같아서 싫어요. 저는 “왜?” “어떻게?” 계속 그렇게 묻고 싶거든요. 어리고 부족한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어요. 철들면 물론 농익은 연기가 나오겠지만, 창의적이고 낙천적인 연기가 나올 것 같진 않아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야 새로운 무언가를 캐릭터에 녹여낼 텐데, 철들면 어쩐지 답이 정해져 있을 것 같달까? 

다섯 살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특별히 성장했다고 느낀 때는 두 번 있었어요. 먼저 이병훈 감독님과 <동이>를 하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키도 많이 컸고요(웃음). 친구 역할을 캐스팅한다고 대사 맞춰주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감독님이 계속 제 연기를 혼내시는 거예요. 억울해서 울기도 했는데, 그랬던 게 결국 도움이 되더라고요.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 온전히 혼자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전에는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동이> 이후에는 대본을 읽으면서 저만의 해석, 저만의 생각을 하게 됐어요. 디렉션을 받으면 내가 생각한 걸 섞어 찍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연애세포>라는 웹 드라마인데, 시즌2를 굉장히 즐기면서 찍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목소리도 잘 나오고 감정도 풍부해지고, 표현이 잘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연기가 ‘재미있다’는 정도였다면, 이젠 촬영장 가는 자체가 행복해졌어요. 
  
연기, 안 하고는 못 살 것 같은가요 연기란 게 이성적이기도 하고 감성적인 일이잖아요. 이렇게 감정 소모가 크고 체력도 많이 쓰는 일을 갑자기 안 하면, 제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물론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죠. 겉으로는 졸리고 피곤하다고 투덜대지만 과연 ‘다른 데서도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류승룡 선배님이 저랑 함께 광고 촬영을 하면서 책을 선물해 주신 적 있어요. <감정수업>이란 책인데, 앞에 편지까지 써주셨어요. ‘배우는 감정을 비우고 채우는 노동을 반복하는 직업이다. 힘든 길 파이팅해서 끝까지 좋은 배우의 길을 걸어라’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걸 보고 감동받고 힘을 많이 얻었어요. 감정을 채웠다 비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최근에 그걸 실감했는데, 그러면서도 또 무언가로 나를 채우면서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돼요. 

열여덟 살이죠. 빨리 스무 살이 되고 싶나요 아뇨, 저는 제 10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너무 슬퍼요.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들한테 제 성장 과정이 보여지고 평가받는 상황에 있다 보니, 그때그때의 행복을 많이 놓쳤던 것 같아요. 괜히 주눅들고 지난 일이나 나중을 걱정하느라…. 지금도 가끔 그렇긴 하지만,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또래 중에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누구예요? 요즘 10대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음악 방송 MC를 하면서 아이돌 가수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그중에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거든요. 배우도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가수란 무대 위에서 짧은 시간에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잖아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무대 뒤에서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이 정말 힘들 텐데, 꾹 참고 오랜 시간 자신의 꿈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는 게 멋있더라고요.

배우 김유정도 충분히 10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봐주는 건 고마운데, 그만큼 부담감이 커요. 한번은 어느 아역배우와 잠깐 인사를 나눴는데, 저를 롤모델로 삼고 심지어 존경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를 좋아하고 동경하고, 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흔들리면 나만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나를 보면서 꿈을 꾸는 친구들한테도 피해를 주는 거니까. 제가 잘해야죠. 

요즘 제일 갖고 싶은 건 뭐예요 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가졌다는 뜻은 아니고요, 딱히 갈구하는 게 없어요. 요즘 촬영하면서 너무 기분이 좋은 상태라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까요. 바라는 게 있다면,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비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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