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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展> 아르누보의 꽃은 지지 않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알폰스 무하는 우아한 광고 포스터를 통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아름다움을 불어넣었다.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展>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예술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무하의 다재다능한 면모를 조명하는 전시다. ‘아르누보의 꽃’이라 불리는 알폰스 무하 생애 전반에 걸친 3백여 점의 작품과 함께 그에게 영향받은 한국과 일본의 만화, 무하의 작품에서 영감받은 주얼리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디자인 안내서 <장식문양집>(1902)에서 가져온 문양을 인쇄한 천으로 천장을 드레이프 장식한 전시장 입구. 사진은 한창때인 1896년 사다리 위에서 포스터 작업 중인 무하.
“예술가의 임무는 사람들이 미와 조화를 사랑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1860~1939)는 프랑스 파리의 벨에포크belle epoque 시대에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을 대표한 예술가다. 그를 포함한 아르누보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은 기존 예술의 고전적 틀을 깨고 자연에서 가져온 형태와 문양을 통해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려 했다. 무하가 그리고, 당시로선 첨단 인쇄 기술이던 채색 석판화(lithograph)를 통해 대량생산한 광고 포스터는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장이 될 것이다”라는 그의 말대로 당시 파리의 거리를 뒤덮었다. 무하가 순수 장식 목적으로 디자인한 값싼 장식 패널 역시 평범한 사람을 위한 새로운 예술 작품이 되었다.

향수 ‘로도’ 다섯 개 세트 패키지.

무하의 재발견
우아한 선과 화려한 색채, 세련된 장식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무하의 작품은 여전히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또 그는 회화와 삽화, 조각뿐 아니라 포스터와 보석, 인테리어, 연극, 제품, 포장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미술 평론가이자 파인 아트&주얼리 갤러리 ‘갤러리 가보’를 운영하는 가렛 마샬은 “오늘날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하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전환기까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과 광고 수요의 증가 등 시대의 변화를 적극 활용한 상업 예술과 디자인의 선구자였기 때문.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배경으로 앉은 무하.

하지만 알폰스 무하의 유산과 작품을 관리하는 무하 재단 큐레이터 사토 도모코의 말에 따르면 무하는 현대미술계에서 많은 오해를 받고 미술사에서 소외된 작가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지나치게 다재다능했기 때문입니다. 예술 활동의 폭이 너무 넓어서 미술 평론가와 사학자들이 미술사 안에 무하를 자리를 찾는 데 실패한 것이지요.” 또 말년에 조국 체코에서 활동한 무하는 그의 사후 집권한 공산주의 정권이 타락한 예술가로 여겨 전시회에서 거의 선보이지 못했다.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展>은 한동안 잊혀온 무하의 전 생애에 걸친 예술 작품과 디자인 작업을 통해 그를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1860년 체코 모라비아 남쪽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알폰스 무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 후 1887년 프랑스로 건너갔고, 세기말 파리에서 세계적 예술가로 성장했다. 책에 들어가는 삽화와 잡지 표지 등을 그리던 무하는 1894년 12월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를 위해 디자인한 첫 번째 포스터 ‘지스몽다’를 의뢰받았다. 길고 폭이 좁은 구성으로 실사 크기의 여배우를 미묘한 색채와 섬세한 곡선으로 그린 이 포스터는 당시 굵은 선으로 대상의 특징을 풍자하는 캐리커처에 가까웠던 대부분 포스터와 완전히 달랐다. 아름다운 포스터에 크게 감명받은 베르나르는 무하에게 포스터 디자인은 물론 극장과 무대장치, 의상, 장식품까지 디자인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파리 박람회에서 선보인 우비강 향수 회사의 홍보용 흉상.

새로운 시대를 디자인하다
무하는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적 몸짓에 영향을 받아 이를 ‘나선의 원칙’이라 칭하며 몸을 감싸듯 휘감는 옷자락과 덩굴식물 등으로 작품에 표현했다. 이런 나선 형태는 그의 다양한 광고 포스터, 장식 패널 등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큐레이터 사토 도모코는 무하가 “대중을 사로잡고, 그들의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심리학적 이해를 디자인 전략에 적용했다”고 설명한다. 이상적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의 외모로 눈길을 사로잡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나 옷자락 등의 곡선을 통해 시선의 방향을 유도한 후, 마지막으로 시선이 머무는 곳에 알리고 싶은 문구나 제품을 배치하는 구성은 ‘무하 스타일’의 전형이다.

무하가 직접 장식한 파리의 보석 매장 부티크 푸케의 실내.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무하는 포스터와 장식 패널은 물론 다양한 일상 도구와 장신구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1898년엔 파리 보석상인 조르주 푸케의 제안에 따라 보석과 그의 새로운 매장 ‘부티크 푸케’의 디자인을 맡는다. 무하는 부티크 푸케의 건물 정면과 내부 장식, 가구 등을 모두 새로 디자인해 조화로운 공간을 완성했다. 부티크 푸케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토파즈와 루비, 자수정, 에메랄드 등 보석을 의인화해 그린 네 점의 연작 채색 석판화는 갤러리 가보의 주얼리 디자이너 남기열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주얼리 컬렉션 ‘알폰스 무하’의 디자인에 직접적 영감이 되었다. 전시에선 부티크 푸케의 내부 공간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화려한 장식 체인과 반지 등 무하가 디자인한 주얼리를 진열했다. 디자이너 남기열은 “세월에 의해 보석의 영롱한 빛은 바랬지만 굉장히 현대적 디자인”이라며 무하가 디자인한 주얼리에 대한 느낌을 밝혔다.

우비강 향수병과 르페브르 위틸 과자 상자. 
1904년 미국을 처음 방문한 무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식 예술가”라는 언론의 찬사와 함께 구대륙과 신대륙에서 동시에 인정받은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이 되었다. 1909년까지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여행과 강의, 작품 활동을 병행한 무하는 1910년 조국 체코로 돌아간다. 그는 프라하 시청사의 외벽을 장식하고 체코 민족의 흥망을 다룬 ‘슬라브 서시’ 연작을 완성했으며, 체코 슬로바키아의 첫 우표와 화폐를 디자인하는 등 대중을 위한 예술에 전념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세상을 떠났다.

 무하가 부티크 푸케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의뢰받고 그린 ‘보석’ 연작과 갤러리 가보에서 제작한 핸드메이드 주얼리 컬렉션 ‘알폰스 무하’. 작품의 색채와 여인의 눈빛, 문양을 주얼리로 형상화했다. (왼쪽부터) ‘루비’ ‘에메랄드’ ‘자수정’ ‘토파즈’.

무하 스타일은 계속된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각 매체중 하나인 광고의 현대적 개념은 19세기 말과 20세 초, 아르누보 시대에 인쇄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형성된 것이다. 인쇄 기술, 심리학 등 당대 첨단 지식과 기술을 누구보다 앞서 활용한 무하의 스타일은 곧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누보 양식 자체를 의미했다. 당시 아르누보의 중심지 파리의 거리를 온통 뒤덮은 무하의 작품이 오늘날 사람들의 시각에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 것은 지금의 광고와 그래픽디자인이 여전히 무하 스타일과 아르누보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는 ‘무하 스타일 이후의 이야기’라는 에필로그로 마무리되며, 무하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 일본 만화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을 시작하는 한국 만화가 고야성의 ‘반지의 제왕 갈라드리엘’이라는 삽화가 무하의 1905년작 ‘백합의 마돈나’ 옆에 걸려 있어 자연스럽게 두 그림을 비교하게 된다. 길게 흘러내린 금발과 옷 주름, 주인공을 둘러싼 흰 백합까지… 무하가 없었다면 과연 이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까? 1백여 년 전 무하가 활동한 아르누보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새로운 기술이 기존 질서를 빠르게 대체하는 전환기다. 우리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앞서 활용한 무하의 예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무하의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3월 5일까지.


interview_ 갤러리 가보 가렛 마샬&남기열
작품, 보석이 되다

갤러리 가보는 미술 평론가이자 컬렉터 가렛 마샬이 주얼리 디자이너 남기열과 함께 운영하는 파인 아트&주얼리 갤러리다.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展>을 즈음해 무하의 네 가지 ‘보석’ 연작에서 영감받은 핸드메이드 주얼리 컬렉션 ‘알폰스 무하’를 제작한 이들을 만났다. 무하의 그림 속 화려한 문양, 특유의 미묘한 색채감이 담긴 이 보석 컬렉션은 이들이 계획하는 아트+주얼리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Q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가렛 마샬 3년 전 무하의 국내 첫 전시 때 알게 된 무하 재단 존 무하 이사장이 작년에 갤러리 가보에 왔는데, 디자이너 남기열의 주얼리와 디자인 스케치를 보고는 협업을 제안했지요. 선을 강조한 남기열의 스케치가 무하의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당시 저희는 미국 작가 도널드 설튼Donald Sultan의 채색 석판화 작품에서 영감받은 주얼리 작품을 구상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무하의 포스터 역시 채색 석판화로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남기열 사실 처음엔 제가 만든 주얼리가 무하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이 다소 부담스러웠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얼리나 무하의 주얼리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품을 모티프로 새롭게 디자인한 주얼리를 만들려 했습니다.

Q 주얼리 컬렉션의 영감이 된 무하의 ‘보석’ 연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남기열 무하의 작업을 훑어보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게 마침 네 가지 보석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습니다. 작품마다 여성의 눈빛이 확연히 다릅니다. 꿈꾸는 듯한 토파즈, 도도한 루비, 당당한 자수정, 신비로운 에메랄드 등 보석의 성격을 눈빛으로 표현했지요.

Q 이 컬렉션을 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무엇입니까?
남기열 무하의 작품과 어울리는 독특한 색상과 모양의 원석을 구하기 위해 홍콩과 일본 등을 다녔습니다. ‘루비’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브로치는 조개를 부조로 조각하는 카메오cameo 방식으로 제작했는데, 이탈리아 남부의 토레델 그레코 지역 장인들에게 맡겼습니다. 최상의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지요.

Q 전시 이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가렛 마샬 예술의전당에서 전시가 끝나면, 백화점에서 전시할 계획입니다. 오래된 기술인 채색 석판화가 다시 각광받고, 한정판으로 무하의 작품도 다시 나오고 있지요. 선명하게 새로 인쇄한 무하의 ‘보석’ 연작과 함께 ‘알폰스 무하’ 컬렉션을 갤러리 가보에서 전시할 계획입니다. 앞서 계획하던 도널드 설튼의 석판화를 모티프로 한 주얼리도 제작, 작품과 함께 전시할 예정이고요. 잘 만든 주얼리는 자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예술 작품처럼 대를 잇는 가문의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 작가의 작품과 거기서 영감받은 주얼리를 제작, 전시하는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지속하려 합니다. 문의 갤러리 가보(070-7731-1530)


취재 협조 컬처앤아이리더스(1666-3539)

글 정규영 기자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