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도로가 마침내 시민을 위한 산책길 ‘서울로 7017’로 재탄생한다. 한때는 오직 차를 위한 도로였던 이곳의 드라마틱한 변신 과정을 사진으로 담고, 이 공간을 디자인한 도시 설계 디자이너 비니 마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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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준공식 당일 서울역 고가도로의 모습. (1975) 만리재로 연결 통로를 공사 중인 모습. (2014) 차가 다니던 서울역 고가 도로의 모습.

오는 5월 20일, 시민을 위한 보행 길로 탈바꿈한 서울역 고가도로가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개방된다. ‘서울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 길,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고, 뒤에 붙은 ‘7017’이라는 숫자는 서울역 고가가 처음 생긴 1970년과 보행 길로 거듭날 2017년을 합쳐 만들었다. 총 59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차량 길’에서 ‘사람 길’로 재생하고, 단절된 서울역 일대를 통합하여 지역 활성화와 도심의 활력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 17갈래의 보행 길로 나뉘어 있으며 카페, 안내소, 전시관 등 20개의 편의시설과 16개의 광장을 갖추고 있다. 서울의 새로운 녹지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이곳은 675개의 나무 화분에 228종의 나무가 심어질 예정이다. 소나무과와 장미과, 목련과 등 총 50과로 구성돼 서울의 대표적인 나무를 볼 수 있다. 지난 3월, 완성을 앞두고 있는 고가를 점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비니 마스를 만나 프로젝트의 시작과 진행 과정을 들었다.

ㅡ최근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언제였나?
작년 11월 말이다. 그때는 바닥까지만 완성된 상태였고, 화분을 배치하기 직전이었다. 지금과는 풍경이 많이 달랐다.

ㅡ서울로 7017을 뉴욕의 하이라인에 빗대어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하이라인이 성공한 프로젝트니까 우리 프로젝트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가의 형태는 매우 다르다. 하이라인은 건물과 인접해 있어 별도의 연결이 필요 없지만 서울로는 건물에 연결된 형태가 아니고 주변 건물과도 떨어져 있어 지면까지 나뭇가지 형상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하이라인과 또 다른 점은 카페나 바 같은 편의시설을 굉장히 많이 두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다양한 편의시설도 화분처럼 둥근 형태여서 고가 전체가 화분들이 이루는 마을처럼 보이길 바랐다. 이건 서울로 7017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화분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도 굉장히 고민했다. 서울에 있는 나무가 다 아름답기 때문에 특정한 몇 개를 고를 수가 없어서 결국 서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나무 228종을 심었다. 나무가 각각 개성이 다르니 다양한 식물이 만들어낸 ‘조화로운 색깔(United Colors of Plant)’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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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서울역 고가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왼쪽과 오른쪽 사진은 각각 2016년 4월과 7월의 공사 모습으로, 고가도로의 상판을 철거하고 교량의 상부 구조물인 거더를 정비하고 있다.

ㅡ건축을 디자인할 때 당신만의 철학은 무엇인가? 그 철학이 이곳에도 잘 반영된 거 같나?
모든 디자인은 더 많은 녹지 공간에 다양한 사람이 함께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서울역 고가도 마찬가지다. 도심의 단절된 공간을 연결해서 많은 사람이 그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길 바랐고, 도시에 넓은 녹지 공간이 확보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디자인했다. 또 하나는, 디자인 자체가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길 바랐다. 예를 들면, 이곳의 많은 화분은 녹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채는 방식으로 공간과의 소통이 이뤄졌으면 했다.

ㅡ서울로 7017을 만들 때 영감이 되어준 게 있나?
아무래도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정원사였고 어머니는 플로리스트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화분을 분류하고 알파벳 순서대로 배열하는 일을 많이 도우면서 식물을 가까이서 접했다. 그런 경험이 서울 고가의 화분을 단풍나무과, 목련과, 물푸레나무과 등 한국의 식물 과를 이름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배열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ㅡ서울시의 요청 중에 가장 실현하기 어려웠던 건 뭐였나?
처음에 서울시는 대중이 좋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해달라고 했고, 그걸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너무 대중적인 디자인은 피하고 싶었다. 이 공간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서울 시민의 취향도 다양할 테니까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다양성을 녹여내려고 했다. 그래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균형있게 맞추는 게 어려웠다. 서울로만의 독창성은 해가 지면 켜지는 조명을 통해 구현했다. 낮에 보는 풍경과는 완전히 다르게 하려고 신경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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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던 지난 3월 3일에는 서울로 7017 위에 화분만 위치해 있었다. 길의 어떤 부분은 아직 바닥까지 연결되지 않은 미완성 상태였다.

ㅡ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도 있나?
없진 않다. 대부분 의도한 대로 되어가고 있긴 한데 안타까운 건 고가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보니까 더 높고 큰 나무를 심는 게 불가능했다. 큰 나무는 바람이 불면 넘어질 수도 있고, 큰 나무를 심으려면 화분이 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고가 구조상 전체적인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서 불가능했다. 또 원래 서울역 광장에서 바로 서울역 고가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계획했는데 구 서울역이 문화재다 보니까 문화재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롯데마트의 옥상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2017년까지는 힘들 것 같고 추후에라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ㅡ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순간은 언제인가?
2015년 크리스마스 즈음 고가에 차량 소통을 막기 시작했을 때다. 차량을 위한 고가도로가 사람을 위한 장소로 변화하려는 그 시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차량을 통제하고 2주 뒤쯤 한국에 와서 눈앞에 있는 텅 빈 도로를 봤을 때 깜짝 놀랐다. 작년 4월에는 CNN에서 취재를 와서 서울로 7017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공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는 게 신기했다. 서울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프로젝트라는 걸 실감했다.

ㅡ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서울에는 2003년에 처음 방문했다. 그때는 온통 아파트만 있는 회색의 도시였는데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공공 공간도 많이 생기고, 녹지 공간도 많이 생겼다. 매력적인 공간이 많이 생겨서 짧은 시간에 굉장히 발전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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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무엇인가?
사실 서울시에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 오늘도 한국에 도착해서 저녁에 고가 위의 조명을 체크하러 왔는데 담당자들이 다 나와서 의견을 들으려고 하더라. 전 세계 다른 도시에서도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는데 이런 자세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하는 모습이 만족스럽다.

ㅡ서울 시민들이 이곳을 어떻게 경험하길 바라나?
사실 건축물은 따로 가꾸지 않아도 오랜 시간 형태를 유지하지만 서울로 7017은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함께 발전시켰으면 한다. 조경을 수목원처럼 만들어 나무를 가꾸고 새로운 식물을 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인하는 사람은 이걸 만들고 떠나지만 시민들이 이곳을 더 풍부하게 채워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면 디자이너로서 꾸준히 이곳에 와서 함께 의견을 조율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뉴욕 하이라인 같은 경우는 디자이너가 매년 한 번씩 방문해 함께 발전 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서울로 7017도 앞으로 그런 과정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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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부터는 화분에 흙을 채우고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각종 편의 시설도 기초 뼈대가 세워지고 있었으며, 17갈래로 나눠지는 길도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ㅡ사람들이 어떤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나?
일단 편한 마음으로 즐겨달라. 그리고 디자이너의 의도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ㅡ교통 문제로 말이 많은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먼저, 서울이라는 도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게 중요하다. 많은 선진 도시가 차량을 줄이고 대중교통과 전기차의 이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도심이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보면 답은 너무 명확하다. 그리고 어떤 프로젝트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서울역 고가가 완성되고 마침내 시민들에게 개방되면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니 마스 2000년 하노버 엑스포의 네덜란드관, 암스테르담의 크리스털 하우스 등의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 디자인 회사 MVRDV의 창립자이자 대표다. 서울시가 ‘서울로 7017’ 프로젝트를 발표한 후 국내외 작가 7인을 선정해 지명 초청 방식으로 작품을 접수한 결과, 비니 마스의 ‘서울수목원’이 선정되어 고가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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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60% 정도 심은 서울로 7017의 모습. 꽃나무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무는 4월 22일까지 모두 심을 예정이다. 엘리베이터나 편의시설도 모양이 많이 잡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