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면서 살지만 다른 누군가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좋아하는 영화나 레슬링 경기를 보고,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게 최고라고 말한다. 그게 바로 유병재의 여행법이다.

 

겉에 입은 로브, 니트톱, 쇼츠는 모두 비슬로우(Beslow). 스트라이프 셔츠는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슈즈는 올세인츠(All Saints). 트렁크는 MCM. 플러쉬와 앤디 워홀 수프 캔은 모두 킨키로봇(Kinkirobot).

겉에 입은 로브, 니트톱, 쇼츠는 모두 비슬로우(Beslow). 스트라이프 셔츠는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슈즈는 올세인츠(All Saints). 트렁크는 MCM. 플러쉬와 앤디 워홀 수프 캔은 모두 킨키로봇(Kinkirobot).

촬영 준비를 마친 유병재가 스튜디오 한켠에 만든 세트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의 아우라는 좌중을 압도했다. 그는 익살스럽고 능청맞은 코미디언이었고 몸짓 하나, 표정 하나로 현장의 모든 스태프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정작 본인은 심드렁해 보였지만 그게 상황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는 확실히 타인을 즐겁게 만들 줄아는 프로 희극인이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에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전할 때는 세심하고 복잡한 인간 유병재로서의 매력을 뿜어댔다.

_6월호 주제가 ‘여행’인데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다지 즐기지 않아요. 워낙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 어디 1박 2일 놀러 가도 첫날 저녁에 고기 구울 때쯤 되면 집에 가고 싶더 라고요. 귀소 본능이 큰 거 같아요.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야 너무 즐겁다, 다음에 또 오자’ 그러진 않아요.

_그럼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언제예요? 
기억나는 건 최근에 갔던 제주 여행 정도예요.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못 쉬다가 시간이 생겼을 때 휴가를 알차게 보내자는 마음으로 갔던 거죠 . 정기적으로 일년에 한 번씩 큰 누나의 리드 아래 가족 여행을 갔는데, 그것도 최근 몇 년은 안 했던 거 같아요.

_처음 갔던 여행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첫 여행은 아니었지만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예요. 집이 가난했어요. 빚쟁이들 피해서 부모님과 태백, 속초 등지를 다니면서 여관방에서 잤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생이지만 집안 사정을 대충은 알잖아요, 이게 여행인지 뭔지 헷갈리는 상태에서 부모님은 제게 여행이라고 속인거죠. 여행도, 야반도주도 아닌 그 중간 정도였어요. 그때 즐거웠는지, 아니면 슬펐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좀 특이했던 경험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생각이 나요. 시작이 이래서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나봐요.

_일이든 여행이든 가장 멀리 떠나본 곳은 어디예요?
작년 말에 EBS에서 방송한 다큐프라임 <2017 시대탐구 청년 – 평범하고 싶다>를 찍으러 스페인에 갔었는데 그게 가장 멀리 떠난 곳이었어요. 해외 나가본 경험도 얼마 없어요. 어렸을 때 누나가 한번쯤은 외국에 나가 봐야 삶에 도움이 된다고 얘기한 것이 기억나는데 저는 막상 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인터넷이 잘 안 되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_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아닐까요?
두려움보다 그냥 집을 너무 좋아하는 거 같아요. 빨리 집에 들어가야 마음이 편해요. 이상하게 며칠 동안 촬영을 한다거나 일할 때는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꼭 여행을 가면 그렇더라고요.

_어느 순간부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휴게소에서 뭐 사 먹을 때까지는 즐겁다가 딱 첫날 고기 구워 먹고 불때쯤 되면 집에 가고 싶어요. 집을 좋아한다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_사람들에게 여행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되기도 해요. 여행 말고 그런 역할을 해주는 건 어떤 거예요?
사실 저는 현실 도피를 원했던 적은 없었어요. 인생이야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고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있는데, 불만족스러울 때도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어차피 안 되는 걸 알아서 그런가 봐요. 저는 술로 현실 도피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새벽 두 시까지 뭐 써야 되는데 잘 안 되면 그냥 ‘아 짜증나, 술이나 마시자’ 해요.

_술 좋아해요?
네, 엄청 좋아해요. 거의 90%는 혼자 마셔요, 집에서. 요즘은 ‘혼술’할 곳도 꽤 많아져서 답답하면 나가서 혼자 마시기도 하고요. 집 근처에 갈 만한 술집이 두세 군데 정도 있어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여행인거 같아요. 특별한 어딘가를 가거나 드라이브 삼아 교외에 나가는 것보다 걸어 나가서 한잔하고 들어오는 게 좋은 거죠.

_<꽃놀이패> 촬영을 하면서는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잖아요.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어요?
풍경이나 장소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마지막 촬영 때 삼척에 갔어요. 마지막이라서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멜랑콜리하다고 해야 되나? 고정 출연을 거의 처음 한 예능 프로그램인데 좀 갑작스럽게 종영이 결정되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원래는 촬영할 때 웃으면서 즐기고 까불고 하는데 그날은 졸업식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_프로그램에 애착이 많았나 봐요.
처음 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예능의 틀 안에서 예능인의 역할로 참여했던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으니까요. 배운 것도 많았고.

_그럼 방송인과 방송작가, 코미디언 중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역할은 어떤 거예요?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했으면 좋겠는 건 코미디언이에요. 하지만 사실 다 똑같아요. 방송인이라는 건 코미디가 방송의 옷을 입었을 때, 즉 방송이라는 채널을 사용했을 때 방송인이라 불리는 거고, 방송 작가는 연기나 출연을 하지 않고 글만 써서 방송 작가라고 불리는 정도의 차이죠.

_창작하는 것과 구현하는 것 중에 뭐가 더 재밌어요?
저는 쓰는 게 훨씬 재밌어요. 잘하는 것도 그거고.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는 로켓 런치 (Rocket×Lunch). 티셔츠는 리바이스(Levis). 안경은 린다 패로우 바이 한독 (Linda Farrow by Handok). 매트릭스는 씰리침대(Sealy). 플러쉬는 킨키로봇.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는 로켓 런치(Rocket×Lunch). 티셔츠는 리바이스(Levis). 안경은 린다 패로우 바이 한독(Linda Farrow by Handok). 매트릭스는 씰리침대(Sealy). 플러쉬는 킨키로봇.

_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뭔가를 쓰는 편인가요?
평상시에는 계속 메모를 해요. 그게 한 줄짜리 문장이든, 이야기든, 대사 하나든, 이야기의 구조든 간에 생각나는 대로 다 메모를 해놓고 필요할때 갖다 쓰는 편이에요. 확실히 직업 자체가 마감이 있어야 뭘 하지, 마감이 없으면 잘 안 돼요.

_창작을 할 때는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맨날 바뀌어요. 예전에는 좀 재미없는 영화 보면 생각이 잘 났어요. 그런 영화에서 이야기를 유치하게 풀어나가는 걸 보면 그걸로 패러디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것도 계속하다 보니까 잘 안 나오더라고요. 각자가 다 다르지만, 저는 주로 집에서 쓰다가 막히면 카페에 가고, 또 막히면 다 른 카페에 가고 그래요.

_<꽃놀이패> 끝나고 요즘은 뭐 해요?
거의 모든 시간을 웬만하면 집에서 보내요. 대부분의 시간은 컴퓨터 앞 에 앉아서 뭐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요.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하고, 영화를 보고, 텔레비전도 보면서.

_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매번 바뀌는데 요즘엔 아침 6~7시에 잠들었다가 오후 1시쯤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요. 옛날에 썼던 거 가져와서 조각조각 맞춰보고 아이 디어도 내보고요. 스탠드업 공연을 준비 중이라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또 스케치 코미디도 예전에 UCC 찍었던 것처럼 하나 만들어보 려고 해요. 기업이나 방송국을 끼지 않고 개인적으로요. 그게 요즘 하는 일 중 가장 신나요. 책 쓰는 것도 이제 막바지라 그 작업도 하고 있어요.

_유병재 하면 사회적 이슈를 풍자하는 류의 코미디가 떠올라요.
사람들을 웃기려고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데 프로레 슬링 얘기를 아무리 코미디로 만들어봤자 사람들이 잘 모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최대 다수가 최소한의 제반 지식으로 웃을 수 있는 그런 것들 로 소재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알고 공감하는 걸로요.

_사회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요?
어떤 이슈가 하나 있으면 거기에 대해 정보 얻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 아요. 그 정도의 지식은 검색 몇 번 하면 인터넷에 나오니까, 지식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훈련에 중점을 둬요. 사안이 있을 때 그 걸 다르게 바라보는 게 제 직업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훈 련을 하는 데 시간을 훨씬 많이 들여요.

_어떤 사회적 이슈에 꽂히는 거 같아요?
딱히 기준은 없어요. 일단 재미있게 풀 수 있을 만한 게 우선이에요. 코미 디의 목적은 웃기는 거지, 제 의견을 설득하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저도 시민으로서의 생각은 있죠. 하지만 그걸 설파하기 위해 코미디를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나의 주장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나’를 지우는 작업을 거치는 게 중요해요.

_그럼 순수하게 웃기는 게 목적인가요?
안 그래도 요즘 저를 두고 소신 발언을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 건 제가 지향하는 것과 안 맞아요. 제 소신을 밝히기 위한 게 목적이 아니 라 그냥 웃길 수 있는 주제 중 하나일 뿐이에요.

_스탠드업 코미디는 언제부터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일 시작하기 전부터요. 그게 어떻게 보면 코미디의 원류 중 하나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명맥이 10년 정도 끊겨버린 상황이어서 더 의미 있겠다 고 느끼기도 했고요. 해보니까 어려운 게 너무 많아요. 음악이나 의상, 등 장인물 등의 장치 없이 정말 마이크 하나 가지고 하는 거거든요. 이야기 를 보여주고 싶어도 말로 다 설명해야 하고. 마치 옷 다 벗고 관객들 앞에 서 검 하나만 들고 있는 느낌이에요. 힘든 만큼 멋있는 거 같긴 해요.

_또래의 청춘들이 유병재의 개그 스타일이나 SNS에 열광적으로 반 응하잖아요. 그런 반응이 오히려 부담스럽진 않아요? 어때요?
그렇게 열광적이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근데 NSS는 따로 심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린 친구들도 꽤 보는 거 같아서 어 느정도의 책임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_SNS의 글들은 즉흥적인 거예요?
아뇨, 엄청 신경 써요. 최소 한두 시간 정도 투자해서 점을 찍을까 말까부터 특정한 문장을 앞에 둘까, 뒤에 둘까 하는 것들까지 따져요. 한두 줄짜리 치고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죠.

_<비정상회담>에서 개인적인 블랙리스트를 공개하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반대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누군가의 성별이나 생김새와는 상관없이 귀여운 사람을 좋아해요. 왜 고양이들도 보면 웃음짓고 애교 떨어서 귀여운 게 아니라 무표정으로 뭔가 열심히 하는 게 귀엽잖아요. 제가 계산적이어서 그런지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몰입하는 모습이 귀여운 거 같아요.

_이상적인 세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있다면 어떤 세상일 거 같아요?
예전부터 ‘지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했는데 지는 게 나쁜 게 아니고 이기는 게 다 좋은 게 아닌, 서로 이기려고 아등바등하지 않는 세상이요. 그런 생각을 다 같이 공유하는 세상이면 좋을 거 같아요. 저는 승부욕이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지는 걸 피하려고 하고 창피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기려고 욕심을 낼 때 오히려 불행해지더라고요.

_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제 자신을 사랑하는 거요.

_잘하고 있어요?
몇 년 전까지는 잘했는데. 요즘엔 싫을 때가 너무 많아서….

_지금 스스로에게 결핍을 느끼는 부분도 있나요?
제 콤플렉스이기도 한데, 잘 안 웃어요. 스무 살 때부터 거울 보고 웃는 연습도 많이 했어요. 사람 대하는 예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는 낯을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10년째 안 고쳐져요.

_잘 안 웃어요?
네. 남을 웃기려고 하다 보니까 잘 안 웃게 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_웃음의 기준이 높은 거예요?
아뇨, 안 웃다 보니까 안 웃는 거예요. 누굴 웃기려면 내가 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어요. 농담을 하거나 어디 자빠지거나 할 때도 내가 진지해야 더 웃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잘 안 웃었어요.

_본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무척 진지한 사람인 거 같아요.

_지금 행복해요?
네, 행복한 편이죠. 저는 일주일에 이틀만 행복해도 행복한 삶인 거 같거든요. 그래서 충분히 행복해요.

_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일까요?
글쎄요. 좋아하고 잘하는 걸 직업으로 가진 것도 큰 부분이긴 하겠죠.

_앞으로 어떤 삶을 꿈꿔요?
직업적으로는 이 일을 오랫동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걸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대박을 터트려야지가 아니라 가늘더라도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저를 꾸준히 사랑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에요.

_현재 안고 있는 고민은 뭐예요?
집. 그냥 막연한 두려움이죠. 회사에서 해준 집이니까 너무 좋은데 당장 나가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는 거니까. 집이 고민이에요.